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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coffee for the soul

by coffee_writer 2022. 4. 6.

요즘 들어 부쩍 어쩌다 커피를 좋아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저의 경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명확합니다. 어떤 일들은 혹은 어떤 사람은 어디서부터 이렇게 좋아졌는지 불명확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만.. 유독 제게 커피만은 또렷합니다. 당신은 어쩌다 커피를 좋아하게 되셨습니까?

뿌옇고 또렷한 그날의 기억

제가 기억하는 저의 첫 커피는 여덟 살 무렵입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커피, 설탕, 프림을 담아두는 용기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른들은 으레 식탁 위에 진열되어있는 커피 보관용기의 뚜껑을 엽니다. 그리고 커피를 포함한 간단한 다과상을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파스텔컬러의 반달 모양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 삑- 하는 소리가 나길 기다리며 찻잔에 커피를 미리 담아둡니다. 찬장에서 예쁜 커피잔을 꺼내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 이렇게 공식에 맞추어 커피를 담고 조그만 상위에 과자나 과일을 곁들여 함께 즐기는 식이었지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서는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인지 찻잔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때문인지 방안은 뿌옇게 눈이 부셨습니다. 그리고 그 달콤하고 고소한 커피 향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제가 엄마 옆에 바싹 앉아서 나도 한 모금 먹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한 모금은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엄마의 커피를 한 모금 나누어 주셨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커피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후로 어쩌다 그렇게 엄마의 커피 한 모금을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주 큰 호사이고 행복이었고 저를 커피에 푹 빠지게 만들었지요.

 

나의 첫사랑 나의 아빠

아빠는 집 근처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저는 매일 공장에서 놀았습니다. 커다란 작업대에 엎드려 숙제도 하고 기계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무실 의자를 돌리며 놀기도 했지요. 어쩌다 거래처 사장님이 공장에 찾아오면 아빠는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주문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유자차도 한잔 추가되었지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저로써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지만 차 한잔 얻어 마시며 거기 같이 앉아있을 수 있는 것이 말이죠. 제겐 아주 완벽한 어른 놀이 시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 입장에선 일을 해야 하니 방해되지 않게 이제 나가 놀아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 저를 배려해서 그렇게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전형적이고 무뚝뚝한 구식 아빠의 무심한 사랑 표현으로 기억되는 순간입니다.

 

힙스터 사장님의 레코드 가게

여고시절 집 근처 레코드 가게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의 한쪽으로는 새로 나온 CD를 또 반대쪽에는 일리 드미타세 컬렉션과 빨간 뚜껑의 원두 캔을 진열해 두셨더군요. 본능에 이끌려 저는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가게로 들어서자 역시 커피 향이 매장의 공기를 가득 매우고 있었지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조그만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운영난으로 가게가 사라지기 전까지 저는 자주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한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도 여러 번이었는데 관심을 가지는 친구는 별로 없었어요. mp3가 유행하면서 예전처럼 레코드점에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에스프레소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커피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3년쯤 지나 가게는 문을 닫았습니다. 좋은 음악 그리고 커피를 즐길 줄 알았던 힙스터 사장님 덕에 마음이 헛헛한 날이면 조용히 작은 소파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실 수 있었던 나만 아는 카페를 그리고 그때를, 지금도 가끔 그 앞을 지날 때면 그리워합니다.

 

coffee for the soul

저에게 있어 커피는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몰아내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입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예쁘고 맛있는 카페가 많고 또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즐기기도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스러운 커피잔에 믹스커피를 마시거나 나만 알고 싶은 카페를 찾아 도시의 구석진 곳을 헤매는 것은 그날 그때의 나의 기억과 감정들을 되살려 오늘의 나를 위로해줄 나만의 커피가 필요해서 일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그 장소도 모두 낡았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새로운 추억을 덧입는 그런 곳 말입니다. 오늘 마신 커피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어쩌다 커피를 좋아하게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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