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먹고 치우는 것에 관하여

여러분은 어떤 계기로 홈카페를 만들고 싶어 지셨나요? 커피와 함께하는 근사한 하루를 상상하셨거나 혹은 멋진 홈카페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시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요. 저의 경우는 집 근처에 갈만한 카페가 없다는 게 큰 이유입니다. 요즘 같은 때 갈만한 카페가 근처에 없다니 하고 의아해하실 분도 있으실 텐데요. 그런 곳도 있습니다. 저희 집은 산 입구에 있다 보니 등산객들을 위한 식당이 대부분이고 좀 귀찮지만 10분 이상은 언덕을 걸어 나가야 먹을만한 커피를 파는 곳을 만날 수 있답니다. 그마저도 너무 비싸서 자주 들르지는 못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어쩌면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시작은 고난의 연속

홈카페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추출기구를 한두 가지 마련하니 얼른 커피가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려고 보면 꼭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터 커피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모두 준비하는데 한 달은 걸린 것 같습니다. 드디어 집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만들던 날 가족들이 제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시끄럽다 였습니다. 왜냐하면 핸드밀을 가지고 인원수에 맞추어 원두를 분쇄하자니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고 그만큼 원두 분쇄음이 나는 시간이 길어졌던 것이지요. 손잡이를 돌리는 손과 팔은 아파오고 언제까지 시끄럽게 그걸 돌려야 하냐는 이야기가 계속되었죠. 저는 그날 5인분의 커피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포트의 물이 너무 식어서 여러 번 다시 끓여야 했고 식탁 위는 점점 어질러졌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커피는 거의 미지근해져 있었습니다.

칭찬을 바란 건 아니지만

사실은 칭찬을 바란 게 맞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예상을 벗어나게 마련이죠. 너무 미지근한 커피를 다시 전자레인지에 데워야 하고, 너무 쓴 커피는 뜨거운 물을 섞어 숭늉으로 만들어 마셔야 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우유와 설탕을 넣기에 바빴지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잖아요? 내가 만든 커피가 맛이 없을 수 있습니다. 비싸게 주고 사온 원두가 아까운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아요. 천천히 몇 번 하다가 보면 분명 맛있게 커피를 만들고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게 되거든요.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 우리는 잠깐 동안 한두 모금 먹고 포기하는 음료를 만들어내거나 혹은 정말 보기에 맛있어 보이고 심지어 사진도 잘 나왔는데 너무 달아서 마시길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유튜브에서 추출 동영상을 찾아보고 레시피를 적는 날도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잘못된 건지 내 커피는 별로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커피는 농산물이고 식품이기 때문에 변수가 참 다양합니다. 그래서 내 취향에 딱 맞게 커피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점차 나만의 기준점을 가지게 되지요. 홈카페를 시작하면서 이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는데 너무 괜찮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날도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실 커피 좀 맛없게 만든 게 실패도 아니잖아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만드는 것은 요리를 한 가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와 예쁘게 담기까지 무엇 하나 다른 것이 없지요. 그리고 요리를 즐긴 후 청소와 설거지 그릇 정리 쓰레기 치우기까지 해야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것처럼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홈카페를 멋지게 유지하기 위해선 추출 기구와 그릇을 각 특성에 맞추어 정해진 방법으로 깨끗이 닦아 제자리에 두어야 하고 남은 원두는 밀폐용기에 담아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두며, 원두찌꺼기는 잘 말려 일반 쓰레기로 분류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귀찮다고 대충 하거나 미루게 되면 금방 장비는 변형이 오거나 세균이 번식하여 쓸 수 없게 되고 홈카페의 운영시간은 점점 단축되겠지요. 하지만 이런 일들도 조금만 신경 쓰면 금세 손에 익숙해지며 어렵지 않아 집니다. 오늘 피드에 올라온 누군가의 훌륭한 홈카페도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당신의 홈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 향이 지속되길 바랍니다.